블로그 · 표정이 살아있는 졸업사진

표정이 살아있는 졸업사진은 사람이 만듭니다

앨범을 받아 들면 사람들은 대개 우리 아이 얼굴부터 찾습니다. 그런데 찾아낸 얼굴이 어딘가 굳어 있으면, 배경이 아무리 좋고 인쇄가 아무리 깨끗해도 그 페이지는 아쉬운 페이지가 됩니다. 제작사양서에는 종이 두께와 면수까지 적히지만, 표정을 적어 넣는 칸은 없어요.

표정은 사진에서 제일 나중에 정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는 셔터를 누르기 한참 전에 거의 정해져 있어요.

서가에서 책을 살펴보는 아이

아이들은 왜 카메라 앞에서 굳을까

낯을 가려서 그런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문제는 상황이에요. 처음 보는 어른이 큰 장비를 들고 서 있고, 옆에서는 선생님이 순서를 부르고, 뒤에는 차례를 기다리는 친구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그 자리에 서면 어른도 어색합니다.

여기에 "빨리 찍어야 한다"는 공기까지 얹히면 얼굴이 먼저 닫혀요. 아이는 지시를 따르려고 애쓰는 얼굴이 되고, 그 얼굴이 그대로 남습니다. 그래서 저는 표정을 아이 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그 자리를 만든 어른들 쪽 문제로 봐요.

촬영자가 먼저 밝아야 아이가 밝아집니다

아이들은 앞에 선 어른의 얼굴을 거울처럼 비춥니다.

촬영자가 무표정하게 장비만 보고 있으면 아이도 무표정해집니다. 반대로 이쪽이 먼저 웃고 있으면, 웃으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얼굴이 조금 풀려요. 이건 나이가 어릴수록 더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표정이 살아있는 졸업사진은 아이에게서 끌어내는 게 아니라, 앞에 선 사람의 표정이 옮겨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제가 제일 신경 쓰는 건 구도나 노출이 아니라 제 얼굴입니다.

촬영이 밀려 있어도, 강당 형광등 아래에서 몇 시간째 서 있어 다리가 굳어도, 아이 앞에 설 때는 표정을 바꿔서 섭니다.

말투도 같이 갑니다. 목소리가 급하면 표정만 웃고 있어도 아이는 서두르는 걸 알아채거든요.

이걸 처음부터 알았던 건 아닙니다. 오전 컷과 오후 컷이 왜 이렇게 다르지 싶어서 한참을 들여다본 날이 있었어요.

아이 얼굴이 아니라 제 얼굴이 오후에 먼저 굳어 있었더군요.

예의를 갖춘다는 건 구체적인 행동입니다

아이를 아이 취급하지 않는 것. 말로 하면 추상적이지만 현장에서는 아주 구체적인 몇 가지입니다. 이걸 지키면 아이가 먼저 경계를 내려놓고, 표정은 그다음에 알아서 나옵니다.

반말로 지시하지 않습니다. "거기 서", "웃어봐" 같은 말은 빠르고 편하지만, 듣는 쪽은 사물처럼 다뤄진 기분이 됩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도 그건 압니다. 그래서 부탁하는 말로 합니다.

이름을 부릅니다. "앞에 학생"이 아니라 이름으로 부르면 자세가 달라져요. 자기가 한 사람으로 불렸다는 걸 알면 경계가 한 겹 내려갑니다.

기다립니다. 표정이 안 나온다고 재촉하면 더 굳습니다. 억지로 만든 웃음을 여러 컷 찍는 것보다, 풀린 얼굴 한 컷을 기다리는 편이 결국 빠릅니다.

싫다고 하면 잠깐 물러납니다. 사진 찍기 싫은 날이 아이에게도 있습니다. 그럴 때 밀어붙이면 그날 그 아이 사진은 전부 그 표정이 됩니다. 다음 순서로 넘기고 뒤에 다시 부르면 대개 괜찮아져요.

특별한 기술이 아닙니다. 어른을 대할 때 당연히 하는 일을 아이에게도 똑같이 하는 것뿐이에요.

다만 시간에 쫓기면 제일 먼저 생략되는 게 이 부분입니다. 순서표를 앞에 두고 마음이 급해질 때마다 속으로 한 번 짚습니다. 여기서 서두르면 오늘 컷이 다 같아지겠구나.

선생님과 그림책을 읽으며 웃는 아이

그렇게 담은 표정이 앨범에서 오래 가는 이유

만들어낸 웃음과 풀려서 나온 웃음은 사진에서 구별됩니다.

받은 그날은 둘 다 그냥 웃는 얼굴로 보여요.

그런데 한참 뒤에 다시 펼치면 달라집니다. 억지로 지은 표정은 그날의 어색함까지 같이 떠오르고, 풀린 표정은 그때 그 아이가 어땠는지를 데려옵니다.

앨범이 그 시간을 견디는 힘은 인쇄 품질에서만 나오지 않아요. 표정이 그 몫을 나눠 집니다.

보정으로 메울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밝기와 피부 톤은 다듬을 수 있어도 굳은 표정은 손댈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표정만큼은 현장에서 끝내야 합니다. 졸업앨범 단체사진에서 얼굴이 가려지지 않게 하는 일이 현장에서만 가능한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촬영 날, 학교와 부모님이 도울 수 있는 것

표정은 촬영자 혼자 만드는 게 아닙니다. 아이가 그 자리에 어떤 상태로 오느냐가 이미 많은 것을 정해놓습니다.

아침에 "잘 나와야 해"라고 말하지 않는 것. 부모님 입장에서는 격려지만 아이에게는 과제로 남습니다. 그 말을 듣고 온 아이는 사진 찍는 내내 잘 나오려고 애쓰는 얼굴을 합니다. 그냥 평소처럼 보내주시는 게 제일 낫습니다.

옷차림은 전날 정해두기. 아침에 실랑이가 있었던 날은 티가 납니다. 무엇을 준비하면 좋은지는 졸업앨범 촬영 준비물에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카메라 옆에 서 주시는 것. 아이는 낯선 촬영자보다 아는 얼굴을 봅니다. 선생님이 옆에 계시면 시선이 모이고 긴장도 덜해요.

순서를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는 것. 줄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수록 표정이 식습니다. 특히 학교 야외 촬영처럼 추운 날 밖에서 진행할 때 그렇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표정이 살아있는 졸업사진은 어떻게 나오나요? 촬영자가 먼저 밝은 얼굴로 아이를 대하는 데서 나옵니다. 아이는 앞에 선 어른의 표정을 그대로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가 카메라 앞에서 유독 굳는데 방법이 있을까요? 낯을 가리는 게 아니라 지시받는 상황이 어색한 경우가 많습니다. 몇 마디 주고받으며 기다려주면 대개 풀립니다.

"웃어"라고 말해주면 되지 않나요? 그 말을 들은 얼굴은 입만 웃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을 걸어 반응이 나오게 하는 편이 표정이 살아납니다.

촬영 전에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게 있나요? 잘 나와야 한다는 말을 아침에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말이 아이에게는 부담으로 남아 표정에 그대로 나옵니다.

표정이 안 좋게 나오면 보정으로 고칠 수 있나요? 밝기나 피부 톤은 다듬을 수 있지만 굳은 표정 자체는 바꿀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끝내야 합니다.


표정을 만드는 건 장비도 아니고 보정도 아니에요. 최대한 밝은 표정으로, 예의를 갖춰서 아이들을 대하는 것. 제가 현장에서 하는 일은 사실 그게 전부입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촬영이 밀리고 날이 추워지면 제일 먼저 무너지는 것도 이 부분이라, 저는 이걸 매번 의식적으로 지킵니다.

결국 앨범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게 그 표정입니다. 촬영 당일 순서를 어떻게 짜면 이 시간이 지켜지는지는 졸업앨범 상담 안내에 적어두었습니다.


글쓴이: 안영강 · 폴라스튜디오 대표, 현장 촬영 디렉터. 촬영부터 인쇄·제본까지 졸업앨범을 직접 만들어 온 사람입니다. 관련 글: 졸업앨범 단체사진 · 학교 야외 촬영 · 졸업앨범 사진 이상하게 나왔을 때 · 졸업앨범 상담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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