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 졸업앨범 컨셉

졸업앨범 컨셉은 유행 목록에서 고르는 게 아닙니다

제작계획서를 앞에 놓고 졸업앨범 컨셉 이야기를 꺼내면, 첫 질문이 대체로 같습니다. "요즘은 뭐가 유행인가요?"

이해가 되는 질문이에요. 정해진 게 없는 상태에서 뭔가를 고르려면 목록부터 있어야 하니까요.

다만 그 질문으로 시작한 앨범은 비슷한 자리에 도착합니다. 예쁘긴 한데 그 학교 것 같지가 않은 앨범이요.

졸업앨범 컨셉은 유행 목록에서 고르는 게 아니라, 그 학교의 그해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먼저 꺼내는 데서 정해집니다. 거기서 나온 컨셉이 오래 가요.

나란히 앉아 그림책을 읽는 아이들

컨셉은 고르는 게 아니라 꺼내는 것입니다

컨셉이라는 말이 오해를 만듭니다. 밖에서 하나를 골라 씌우는 일처럼 들리거든요.

컨셉 회의에서 제가 실제로 하는 일은 반대쪽입니다.

그 학교의 1년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계속 여쭙습니다. 유독 오래 준비한 행사가 있었는지, 아이들이 학교에서 제일 많이 모이는 자리가 어딘지, 올해 유난히 말이 많이 나온 일이 무엇이었는지.

그러다 보면 한두 개가 걸립니다. 운동장 끝 낡은 스탠드일 때도 있고, 급식실 앞 복도일 때도 있어요. 밖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자리인데 그 학교 사람들에게는 아닙니다.

컨셉은 거기서 나옵니다. 목록에서 고른 것이 아니라 그해에 실제로 있었던 것에서요. 요즘 앨범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는 요즘 졸업앨범, 무엇이 달라졌나에 따로 적어뒀습니다.

첫 번째 질문 — 누가 정하는가

회의에서 제일 먼저 갈리는 게 이겁니다. 학생 의견을 어디까지 받을 것인가.

전부 받겠다고 시작하면 대개 중간에 멈춥니다. 의견이 갈리고, 조율할 사람이 없고, 결국 담당 선생님이 혼자 결정하게 돼요. 반대로 아예 안 받으면 아이들이 자기 앨범인데 남의 물건처럼 받아 듭니다.

그래서 저는 시작할 때 선을 그어두시길 권합니다. 학생이 정할 칸과 학교가 정할 칸을 미리 갈라두는 것. 예를 들어 표지 방향과 판형은 학교가 정하고, 반별 지면의 분위기나 문구는 반에서 정하는 식입니다.

이렇게 해두면 의견을 받는 일이 일이 되지 않습니다. 받을 수 있는 칸이 정해져 있으니까요.

두 번째 —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컨셉을 "어떻게 보이게 할까"로 물으면 답이 잘 안 나옵니다. "무엇을 남길까"로 바꾸면 훨씬 쉽게 나와요.

이 학년이 뭘 하고 지냈는지, 몇 년 뒤에 펼쳤을 때 무엇이 떠올랐으면 하는지.

그 답이 정해지면 색이나 서체는 따라옵니다. 순서가 반대가 되면, 예쁜 시안이 나왔는데 정작 담긴 게 없는 앨범이 됩니다.

지면 구성을 잡지 형식으로 끌고 가는 방식은 매거진 스타일 졸업앨범에서 따로 다뤘어요. 그 형식도 결국 이 질문에 답이 있어야 살아납니다.

두 손을 든 아이

세 번째 — 촬영으로 실현되는가

회의실에서 좋았던 컨셉이 현장에서 무너지는 건 대개 세 가지 때문입니다. 장소, 시간, 날씨.

장소는 학교 안에서 실제로 쓸 수 있는 곳인지를 봐야 합니다. 사진에서 좋아 보이던 자리가 수업 중에는 못 들어가는 곳일 때가 있어요.

시간은 빛입니다. 같은 자리도 오전과 오후가 다른 사진이 됩니다. 특정 시간대를 전제로 한 컨셉이면 그 시간에 학사일정이 비는지부터 확인해야 해요.

날씨는 야외 컨셉의 발목을 제일 자주 잡습니다. 비만 문제가 아니에요. 바람이 부는 날은 운동장에서 머리카락이 계속 흐트러져 대열의 선이 지저분해 보이고, 비가 갠 직후에는 바닥이 물러 아이들 서 있는 자세가 자꾸 바뀝니다.

그래서 야외를 쓰기로 했다면 비 오는 날 대안까지 같이 정해두는 것을 컨셉의 일부로 봅니다. 대안이 없는 컨셉은 컨셉이 아니라 희망이에요.

컨셉을 촬영 일정보다 먼저 정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컨셉이 장소와 시간대를 정하기 때문에, 찍기 시작한 뒤에 바꾸면 이미 찍은 컷이 어긋납니다.

네 번째 — 종이에서 어떻게 보이는가

가장 자주 놓치는 칸입니다. 컨셉은 화면에서 정해지고 앨범은 종이로 나옵니다.

화면은 스스로 빛을 내지만 종이는 빛을 받아서 보입니다.

그래서 모니터에서 깊어 보이던 어두운 톤이 인쇄물에서는 둔탁하게 앉고, 얇은 서체와 옅은 색 글씨는 생각보다 약해집니다. 강한 색 위에 흰 글씨를 얹는 구성도 화면에서만 선명한 경우가 많아요.

교정지를 손에 들면 이 차이가 바로 옵니다. 종이는 빛을 흡수해서, 화면에서 반짝이던 부분이 차분하게 내려앉아요.

용지에 따라서도 갈립니다. 매트지는 색을 눌러 앉히고, 코팅지는 빛을 되쏘아서 같은 파일이 더 진해 보입니다.

이건 인쇄가 잘못된 게 아니라 매체가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시안을 보실 때 화면 기준으로 예쁜지가 아니라 종이에 앉았을 때를 전제로 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시안을 처음 종이로 뽑아본 날 저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건 모니터에서 정하면 안 되는 거였더군요.

유행 컨셉을 어떻게 다룰까

Y2K처럼 그해에 강한 유행이 있으면 회의에서 꼭 나옵니다. 저는 무조건 말리지는 않아요. 지금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 그 학년의 진짜 기록이기도 하니까요.

다만 하나는 말씀드립니다. 졸업앨범은 한참 뒤에 펼쳐질 걸 전제로 만드는 물건입니다. 옷이나 유행어와 다르게, 이건 십 년쯤 지나서도 책장에 그대로 남아 있어요.

유행을 앨범 전체에 덮으면 나중에 남는 게 연도가 됩니다. "그때 저게 유행이었지"에서 끝나요.

반대로 한 부분에만 두면 그건 기록이 됩니다. 그해의 공기를 보여주는 한 칸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권합니다. 뼈대는 그 학교에서 나온 것으로 세우고, 유행은 그 위에 한 요소로 얹는 것. 두 자리가 바뀌지만 않으면 대체로 오래 갑니다.

정해진 컨셉은 문서에서 이렇게 내려앉습니다

회의에서 정한 컨셉은 그대로 두면 말로만 남습니다. 제작계획서와 사양서의 항목으로 옮겨 적어야 실제로 만들어져요.

옮겨 적히는 자리는 대개 네 군데입니다. 판형, 표지 방식, 지면 구성, 그리고 촬영 일수.

야외 장면을 쓰기로 했다면 그건 촬영 일수 칸에 붙습니다. 반별 지면을 따로 두기로 했다면 페이지 수 칸이고요.

이 옮겨 적는 일을 건너뛰면 나중에 시안에서 어긋납니다. 회의록에는 있는데 사양서에는 없는 항목이 되는 거예요.

자주 묻는 질문

졸업앨범 컨셉은 어떻게 정하나요? 유행 목록에서 고르기보다 그 학교의 그해에 무엇이 있었는지부터 꺼내는 편이 좋습니다. 거기서 나온 컨셉이 오래 갑니다.

학생 의견은 어디까지 반영할 수 있나요? 반영 범위를 미리 정해두면 대부분 가능합니다. 무엇을 학생이 정하고 무엇을 학교가 정할지를 회의 시작할 때 갈라두시는 게 좋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컨셉을 그대로 해도 될까요? 한 요소로 쓰는 것은 괜찮지만 앨범 전체를 유행으로 덮으면 시간이 지나 연도만 남습니다. 유행은 부분에 두시길 권합니다.

컨셉은 언제까지 정해야 하나요? 촬영 일정을 잡기 전입니다. 컨셉이 장소와 시간대를 정하기 때문에, 촬영을 시작한 뒤에 바꾸면 다시 찍어야 하는 컷이 생깁니다.

화면에서 본 컨셉이 인쇄물에서 달라 보일 수 있나요? 달라 보입니다. 종이는 스스로 빛을 내지 않아서 어두운 톤과 얇은 글씨가 특히 약해집니다. 시안 단계에서 인쇄를 전제로 확인하셔야 합니다.


컨셉 회의에서 오가는 질문은 결국 네 개입니다. 누가 정하는가,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촬영으로 실현되는가, 종이에서 어떻게 보이는가.

이 네 개를 순서대로 지나오면 컨셉은 저절로 좁혀집니다. 반대로 "요즘 뭐가 유행인가요"에서 출발하면 좁혀지는 대신 계속 다른 후보가 나와요. 고를 것이 무한하기 때문입니다.

그 학교의 1년에서 시작하면 후보는 애초에 몇 개뿐입니다. 그중 하나를 고르는 건 어렵지 않아요. 어려운 건 그 몇 개를 처음 꺼내는 일이고, 그건 학교가 저보다 훨씬 잘 아십니다. 컨셉 회의에서 제가 주로 묻기만 하는 이유가 이겁니다.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는 졸업앨범 상담 안내에 적어뒀습니다.


글쓴이: 안영강 · 폴라스튜디오 대표, 현장 촬영 디렉터. 촬영부터 인쇄·제본까지 졸업앨범을 직접 만들어 온 사람입니다. 관련 글: 매거진 스타일 졸업앨범 · 요즘 졸업앨범, 무엇이 달라졌나 · 졸업앨범 상담 안내


← 블로그 글 목록